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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와 애버리지니의 고립된 세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최소한 4만5000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다.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낮은 해수면으로 인해 뉴기니 및 그 주변 다른 섬과 육로로 연결되어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사흘 대륙이라는 남반구 대형 대륙을 형성하고 있었다. 플라이스토세 말엽 기온 상승으로 인해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렸고 해수면이 상승했다.
그 시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사이의 육로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거의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는 문화 역사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뉴기니고원에서는 기원전 8000년부터 원시 농경이 시작된 최초의 흔적이 발견되는 데 반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생활 및 경제 형태는 이전의 수천 년 동안의 시기와 큰 차이 없이 지속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람이 처음 거주한 이래, 반복적으로 기후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플라이스토세 후기에서 홀로세로의 전환기에 일어났던 기후 변화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약 1만8000년 전, 강수랑은 급격히 감소했고 대기는 건조해졌다. 이러한 기후 변화가 플라이스토세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의 생활 공간과 환경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현재의 연구 수준은 여전히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 신빙성 있는 판단을 내리기도 어렵다. 최소한 여기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플라이스토세에서 홀로세 초기로의 전환기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선사시대 문화 발달에서 전혀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된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1만 년과 기원전 7000년 사이 기온 상승과 함께 찾아온 기후 변화는 강수량을 증가시켰다. 당시 강수량은 심지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 때문에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에서는 숲과 덤불 지대가 확산되었다.
당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했던 식생은 유칼립투스였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는 열대 우림이 발달해 부분적으로 인접한 파푸아 뉴기니와 비슷한 식물상을 형성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내륙의 건조한 지역에서도 많은 강수량 덕분에 식생 분포가 빽빽하게 형성되었고 이는 동시에 사구의 활동을 감소시켰다.
오늘날 중앙 오스트레일리아의 호수들을 연구함으로써 밝혀진 바에 의하면 당시 나무 꽃가루가 증가세를 보였다.
홀로세 초기가 끝날 무렵인 기원전 4000년에서 기원전 3000년경, 몇몇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 지형은 상당 부분 오늘날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물론 후대에 자연 조건에 의해서 또는 개간을 위한 방화 처럼 인간의 개입에 의해서 제한적인 기후 지형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가장 오래된 호모 사피엔스의 잔해는 4만 5000년에서 3만6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늦어도 약 3만 년 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전역에, 즉 대륙 가장 바깥쪽에서부터 주거에 적대적인 내륙지역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발길이 가닿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지형과 기후대에 적응하는 법과 거기서 생존하는 법을 배웠다.
일명 오버킬 이론의 신봉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인간이 거주하게 되면서 플라이스토세의 대형 포유류(가령 대형 캥거루나 웜뱃)가 멸종하게 되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학계는 대형 포유류의 멸종은 호모 사피엔스의 사냥 때문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에 최초의 사람이 들어오기 전 이곳 동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기후 변화 때문일 것이라는 데 대체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2만 년이 넘게 인간에 의해 사냥되었으면서도 멸종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대형 포유류가 존재한다.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환경에 미친 더 중요한 영향은 개간을 위한 방화였다. 사람들은 특정 지역에 일부러 불을 놓아 빽빽한 식생 분포를 성기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를 통해 특정한 포유류 사냥을 쉽게 하고 식량 조달용 식물채집을 용이하게 하여 성장을 촉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다양한 기후대와 지형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여 아래에서는 각각의 구체적인 지역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는 플라이스토세 이후부터 해안 지대와 해안에 바로 인접한 섬들에 주거지가 집중되어왔다.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기후가 다시 다습해지고 숲이 확대되자 동식물 식량 자원이 풍부해져 사냥과 채집에 유리하게 되었다.
건조성 기후였던 주변 지역에서만 사람이 별로 살지 않았는데, 이런 지역에 거주했던 집단은 높은 이동성을 보였다.
기원전 2000년 전부터 홀로세 후기가 시작되면서 인구가 다시 한번 현저히 증가했다. 새로운 주거지가 많이 생겨났고 해안가에서 커다란 흙더미와 조개무지가 발견되었다. 해안에 가까운 주거지는 무엇보다 바다가 제공하는 지원에 식량을 의존했다. 하지만 야생 풀의 씨를 빻아서 갈거나 열대우림에 흔한 덩이뿌리 식물을 섭취하는 등 식물의 가공 및 소비 또한 점점 더 중요성을 띠어갔다.
가장 이른 시기에 길렀던 가축 중에는 딩고가 있다. 딩고는 동남아시아와 태평양 지대에 퍼져 있었던 개의 한 종류로 홀로세 후기에 오스트레일리아로 들어왔으리라 생각된다.
홀로세 후기에는 암석 벽화가 지방색을 더 강하게 띠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영토권의 초기 형태가 발전하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연구자 사이에서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석기는 이전 시기보다 더 정형화되었고 가공이 정말했다.
복합형 도구의 부속품으로 사용되었던 규석으로 만든 석촉 또는 칼날이 발견되었으며 암석으로 만든 손도끼도 발견됐다. 매우 다양한 암석 재료를 사용했다는 것은 장거리 물자 교환이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즉 이전에 서로 고립되어 있었던 주거 공동체 사이에 점차 다양한 교류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지방에서 홀로세 후기에 현저히 늘어난 것은 비단 인구와 발굴지 숫자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생태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애버리지니의 적응력 또한 높아졌다.
이와 같은 적응력의 상승은 석기 및 뼈로 만든 인공물을 이용하여 효율적인 식량 조달 전략을 전개할 수 있는 능력으로 나타났다. 이 변화과정에서 사람들은 계절에 따라 여러 주거지로 옮겨다녔고 다양한 생태 시스템 속에서 생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남부의 온대 기후 지방은 이 대륙에서 가장 초기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현재 알려진 바로는 플라이스토세 때 이 지역 인구의 밀집도는 오히려 낮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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