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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착생활에서 원시 도심지로의 발달 과정, 이란과 중앙아시아

오늘날 자그로스산맥 서쪽에 위치한 이란 저지대는 어느 시대건 메소포타미아 문화 영향권에 속했던 지역이다. 특히 후지스탄, 즉 고대 엘람 제국은 근동에서 유적이 가장 풍부한 곳이다. 이곳에서 정착생활, 농경, 가축 사육의 시작은 다른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먼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그로스산맥 발치의 초가 골란에서는 중요한 유적지가 발굴되었는데, 이 발견 덕분에 수렵 채집 생활에서 생산 경제로의 이행과정이 밝혀졌다. 조사에 따르면 이미 기원전 1만 년경에 이곳 사람들은 야생 곡물을 경작해보려고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곡물은 보리와 밀의 야생종, 아마, 콩이었다. 또한 들염소는 사냥만 한 것이 아니라 작은 무리로 기르기까지 했음이 확실시된다. 

 

이를 가축 사육의 시초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 후 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 기원전 8000년대와 기원전 7000년대, 자그로스 산맥 서쪽 지역에서는 신석기 부흥기로의 이행이 일어났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자그로스산맥 서부 중에서도 동쪽에 위치한 수시아나 지방의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유적지의 대표적인 예로 초가 보누트가 있는데, 이곳에서 토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돌로 만든 용기와 농경 및 가축 사육에 관한 최초의 단서가 발견되었다. 이에 반해 자그로스산맥 동쪽, 이란 고원과 이란 동북부에서는 아직까지 토기 사용 이전 최초의 신석기시대에 대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후지스탄에서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000년대 중반 경에 막을 내린다. 이를 증명해주는 것이 모하마드 자파르 유적지와 같은, 이 시기에 속하는 유적지들이다. 이 유적지에서는 잘게 썬 짚을 넣어 점성을 희석시킨 최초의 민무늬 토기가 발굴되었으며, 석기들은 여전히 세 석기적 특징을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유적지층은 메소포타미아 자르
모 문화 후기 및 사마라 문화 초엽과 시기상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기원전 5000년대 초에는 신석기 유적지가 뚜렷이 증가하는 것이 관찰된다. 이 유적지들에서는 고급 토기가 다량 생산되었는데 그중에는 채색 된 토기도 있었다. 이 문화가 나타나는 지역은 후지스탄 지방의 세피드에서 이란 고원 서쪽 시알크] 유적지를 거쳐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의 제이 툰까지 미친다. 

 

이후 불과 수백 년도 지나지 않아 이란 동남부에 위치한 이블리스와 야하의 대형 구릉지에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
기원전 4000년대 중반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아 후지스탄에는 문화 발달이 일어난다. 이는 연대상으로 볼 때 우바이드 문화의 뒤를 이은 우루크 시기, 그리고 메소포타미아에서의 원시 왕조 시대와 같은 시기다. 자그로스산맥 동쪽 이란 고원의 여러 지역에서는 거주민들이 메소포타미아와 밀접한 교류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에서의 문화 발달 과정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러한 교류관계가 동남쪽으로는 이블리스와 야하, 이란 고원 동북쪽으로는 시알크와 히사르에까지 미쳤다는 사실은 충분히 입증되어 있다.

 

더불어 이곳들의 주거 역사를 보면 기본적으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각 지역은 더욱 뚜렷하게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며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란 고원 북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지는 상이 차크마그다. 이곳에서는 주거 구릉지 두 군데가 발굴되었는데 서쪽 구릉이 더 오래되었다. 이곳에서는 민무늬 토기 몇 점만 발견되었고 채색된 점토 용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곳에서 T자형 작은 조각상을 발견했는데 이는 후지스탄, 예를 들어 모하마드 자파르에서 나온 후기 자르모 문화의 신석기시대 초기 조각상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 유적지충들은 기원전 6000년대 후반기에 속한다. 더 이전에 속하는 유적으로는 카스피해의 호투 동굴의 발굴물이 있다. 이 유물들은 대부분 중석기시대적 특징을 보이지만 토기 사용 이전 신석기시대 문화에 속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에 비해 이 문화의 경제 방식에 대해서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다. 

 

이 문화인들이 수렵 채집 생활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당시 생산 경제의 서막을 열 수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상이 차크마그 동쪽 구릉지는 서쪽 구릉지보다 더 후대에 속한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6000년대 말엽경으로 추측되며 기원전 5000년대 대부분 동안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쪽 구릉지 퇴적층의 중요한 특징은 채색 토기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 토기는 북부 지방과 연관시켜 생각할 때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제이툰 문화 토기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훨씬 다양한 문화적 관계가 얽혀 있음이 확인되는데, 콤루드의 구릉지같이 훨씬 남부 지방에서도 비슷한 발굴물이 나왔고 이란 중부 지대 서쪽, 카샨 지방 시알크 유적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상-이 차크마그동쪽 구릉지 가장 위층에서 나온 유물은 이란 중부의 체시메-알리 문화와 왕래가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체시메-알리 문화는 카샨 지역에서는 시알크 II기에 해당되며 북쪽의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지방에서는 제이툰 문화 후기 단계와 일치한다.

 

이란 북부와 중부에서의 신석기시대 연구는 지금까지 매우 파편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정착생활과 생산 경제 활동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되어 이란 고원을 거쳐 근동아시아 동북부의 가장 외곽에 위치한 지역까지 전파되었고 이 과정에서 이란 북부와 중부가 했던 역할은 상당히 큰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상기하면 이 같은 연구 진행 상황은 더욱더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이란 북부와 중부의 지금까지 알려진 많은 원시 유적지는 오래전에 발굴이 이루어졌는데 이후 적절한 현대적 현지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 후속 조사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면 원시 경제 방식을 재구성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주거지들은 지금의 연구 상태만으로도 당시 문화적 교류가 매우 활발했음을 잘 드러내준다. 이러한 교류관계망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메소포타미아 문화권과 후지스탄 문화권이었다. 이들은 기원전 6000년대 중반부터 이란 고원을 넘어 동북 지역으로까지 영향을 미쳤다.

 

투르크메니스탄 남부에 해당되는 동북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6000년대 말, 제이툰 문화가 시작되면서 초기 석기시대 문화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생산 경제의 문명 기술이 서남부 지역에서 동북부 지역 방향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이다. 즉 서남쪽일수록 더 일찍, 동북쪽일수록 더 늦게 생산 경제가 시작되었다.

 

이 문명 기술은 제이툰 지방에서 다시 중앙아시아의 북부 지방으로 확산되었다.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코페트다그산맥 바로 북쪽에 위치한 지대에서는 제이툰 문화와 더불어 서아시아의 특징을 보이는 초기 신석기 문화가 발견된다. 이 문화는 비교적 연구가 잘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산맥 인접 지역은 작은 하천이 많아 이로부터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은 한때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개척 지대가될 수 있었다. 이 지역에 신석기시대 주거지역이 상당히 많이 분포했던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인구 집중도가 꽤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한 주거지역에 여러 세대에 걸쳐 살았고 한 장소에서 고정되어 사는 생활
방식은 주거 구릉지를 형성시켰다. 이런 유적지들에서 발굴된 제이툰 문화 지층들은 그 위로 수 미터나 되는 이후 시기 지층을 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 때문에 대단위 면적 조사가 어려움을 겪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여러 층으로 두텁게 쌓인 유적지층은 문화의 시간 순서를 정하는 데 좋은 근거 자료가 된다. 이 유적지들의 토기는 세 단계로 구분되는 데,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용기의 채색 장식이다. 석기 목록을 보면 초기 문화 단계에서는 중석기적 특징을 띠는 기하학적 모양의 세석기가 주를 이루다가 제이툰 문화 시기 동안 현저히 감소한다.

 

여러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참조해볼 때 제이툰 문화는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이 측정 결과에 의해 밝혀진 바로 이 문화는 기원전 6000년대 말에 일어나 기원전 4000년경에 쇠퇴했다.

 

제이툰 문화인은 주로 모래 언덕에 주거지를 세웠다. 이들은 보통 수백년 동안 주거지를 유지했는데, 이는 한 장소에서 상당히 고정적으로 살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주거지 발전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제이툰의 두 번째 지층에서 파악되는 주거지의 배치는 건물이 띄엄띄엄 불규칙하게 늘어선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