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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프 문화 유적지

인포공급 2023. 4. 6. 04:40

나투프 문화 유적지

예리코 지방텔 에스술탄)에서는 이 지방이 역사적 문헌에 오르기 훨씬 이전 시기에 존재했던 거주지가 발견되었다. 맨 아래 지층에서는 나투프 문화 가장 초기의 노천 주거지 유적이 나왔고, 뒤이어 곧바로 토기 이전 신석기시대가 그다음으
로 토기 신석기시대가 출토됐다. 나투프 문화 유적지는 크기가 각기 다른데, 면적이 1000제곱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반원 또는 타원형 움막집들을 볼 수 있고, 그중 어떤 것은 땅을 조금 파서 지어 진 것도 있었다. 

 

가옥은 일종의 초석 또는 주춧돌 구실을 하는 돌 위에 롬 흙을 짓이겨 발라 만든 구조물을 올렸다. 기둥 여러 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고, 움막 내부 바닥은 단단히 다져져 있으며, 보통은 집 중앙에 커다란 모닥불 자리가 있다. 이따금 작은 돌들로 안쪽을 포장해 만든 구덩이 흔적이 발견되는데, 이 구덩이는 저장품을 보관하기 위한 용기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용도로 바구니 또한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지만 현재로서는 나투프 문화에서 증거를 발견하기 힘들다. 나투프 문화 시기에는 사냥 외에 야생 곡물 채집이 식량 조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고 이는 식물 재배로 넘어가기 위한 결정적인 단계가 진행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나투프인은 이 단계를 지나자마자 곡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특별히 환기시키고 싶은 사실은 시리아의 유프라테스강 근처에 위치한 아부 후레이라에서는 기원전 1만1000년경 아직 재배종으로 개량되지 않은 야생 곡물을 길렀다는 사실이다. 수확할 때는 규석 재질의 낫을 이용했다. 동물 뼈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고기 또한 식량의 일부였음을 알 수 있다. 가젤 뼈가 주를 이뤘는데 새끼의 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돌로 만든 화살촉은 나투프 시기에 사냥꾼이 이미 활과 화살을 사용했음을 증명해준다. 

 

활과 화살은 아주 빠른 사냥감을 잡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후기구석기시대 투창가속기 다음으로 중요한 발명품이며, 사냥 기술에 엄청난 혁명을 가져다주었다. 나투프 시기에 사냥꾼은 가젤 외에도 들소, 염소, 붉은사슴, 다마사슴, 노루, 멧돼지, 아시아당나귀, 야생마 사냥에도 주력했다. 이후 이 동물들은 대부분 가축 화되었다. 

 

이 밖에도 여우, 고양이, 오소리, 족제비를 사냥했는데, 고기보다는 털가죽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전 시기에 비해 거북이,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과 황새, 오리, 자고새 등 조류 비율이 크게 늘어났다.

 

사냥은 나투프인에게 죽음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동족의 죽음이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이 시기 시신의 매장 형태에 대해서는 증거 자료가 많이 존재한다. 시신은 주거지역 옆 또는 폐가에 매장되었다. 하지만 살고 있는 집 바닥에 묻는 사례는 전혀 보고되지 않는다. 이런 풍습은 나투프 문화의 뒤를 이어 나타나는 신석기시대에 볼 수 있다. 보통 나투프의 묘광은 돌이 많은 땅을 파서 만들었다. 

 

여기에 장신구, 갖은 도구, 동물 잔해와 함께 시신을 매장한 후석판으로 덮었다. 시신 한 구만 매장된 무덤도 있고 합장된 것도 있다. 시체를 눕히는 방식과 머리를 어느 방향으로 둘지에 관해 정해진 규칙은 관찰되지 않는다. 개가 함께 묻혀 있는 무덤도 눈에 띈다. 이런 풍습은 개가 인간의 동반자로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개는 인류가 길들인 첫 번째 동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개는 이미 후기구석기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살았다. 시신 중에는 묻기 전에 머리가 잘 린 것도 있는데, 그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동의 묘는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비율이 높았다.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린이 매장 방식이 (후기구 석기시대 이미 여러 번 관찰되었듯이) 어른과 비슷했음이 눈에 띈다.

 

즉 어린이도 일반적 매장 풍습에 따라 똑같이 매장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관습은 후대에 가면서 점점 사라진다. 장제와 부장품으로 볼 때 당시 사회에 뚜렷한 신분 구분이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집단의 여느 구성원과 어떤 점에서든 구분되는 개인이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물도 발견된다. 일례로 수년 전 북이스라엘의 힐라존 타크티트 동굴에서는 매우 특별한 무덤이 발견되었다.

 

발견된 시신은 40대 중반에 신장이 1미터50센티미터로 그리 크지 않은 여자였으며,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던 듯하다. 그녀는 암석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무덤 벽에 등을 기댄 채 안치되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이런 자세만이 아니었다. 다른 부장품들, 즉 거북이 등껍질 50개, 족제비 한 마리의 잔해, 레오파트 해골 하나, 독수리 날개, 또 다른 동물의 뼈와 인간의 발 하나, 그리고 현무암으로 만든 사발이 이 무덤에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런 후 돌로 빈 공간을 채워넣어 봉했다. 이 무덤을 발굴했던 학자들은 부장품에 동물이 있었던 것을 근거로 이 여자가 무당이었으리라 추측했다. 나투프 문화에 대한 현재 연구 수준으로 이런 해석에 동조할지 말지 논하기 전에,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즉 이러한 발견은 당시에 한 공동체 내에서 특정한 능력이나 임무와 관계 된 특별한 역할을 하는 개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는 사실이다.

 

나투프 유형 문화에는 규석, 뼈, 뿔로 만든 수많은 도구가 망라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이 시기에는 암석으로 만든 도구도 중요해졌다. 특히 눈에 띄는 도구로는 뼈, 뿔, 규석으로 만든 낫과 돌절구, 절굿공이, 바닥이 낮은 주발, 석회암 또는 사암으로 만든 대접이 있다. 이런 용구 및 그릇은 식물성 식량을 가공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다.